https://www.youtube.com/watch?v=rrzTz8RPMs4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은 여름이었다. 바깥에선 매미가 짝을 찾아 죽어라 울었고 비가 오기 직전의 수분을 가득 머금어 눅진한 바람이 창문을 타고 넘어 목덜미를 쓸고 갔다. 빌어먹을 학교는 전기를 아껴야 한다며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길 반복했고 아이들은 나름의 방법을 찾아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집에서 가져오는 쿨 스카프나 쿨 스프레이는 얼마 가지 못해 녹거나 동이 났다. 내내 틀어져 있는 선풍기는 더운 바람만 나와 오히려 더 덥고 불쾌하다며 틀지 않았다.

 

누군가 화장실 청소를 할 때 쓰는 양동이에 물을 떠다 발을 담근 것을 시작으로 양동이는 교내 인기 1순위를 당당히 차지하며 매일같이 양동이 쟁탈전이 벌어졌다. 양동이를 스스로 사서 쓰는 녀석들은 그 수가 적었고 대부분의 양동이를 얻지 못한 녀석들은 결국 더위를 피해 훌렁 제 교복을 벗어 던졌다. 학교에서 정해준 교복은 땀 배출에 취약하기 짝이 없어 내내 입고 있으면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땀띠는 물론이고 빨기 용이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체육복 바지가 땀 배출이나 통풍과 같은 모든 제반 사항이 나았기에 모두 체육복 바지만 입은 상태였다. 바지 외에 남은 것이 없는 살색이 적나라한 광경은 그다지 정신 건강에 좋지 못했다.

 

참담한 광경을 참다못해 고개를 돌리면 여느 때처럼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앉은 그 녀석이 보일 것이었다. 창가 쪽에 예상대로 허여멀건 한 얼굴에 주름진 셔츠에 수더분한 머리카락, 그 아래로 길게 뻗은 속눈썹의 녀석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지 물기 어린 새까만 눈과 마주친 순간 녀석이 매우 놀라며 고갤 돌려버렸지만, 그 이전에도 종종 그렇게 쳐다보는 시선의 주인이 그 아이었음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주변 놈들은 놈의 어머니가 살인자라며 수군거리곤 했다. 본인이 살인자가 아닌데도 단지 그 이유로 배척당하곤 했고 녀석도 그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언제나 피죽도 못 얻어먹은 양 빼빼 말라 고교 내내 키도 그다지 크지 못했고, 몸무게도 얼마 이상 늘어나지 않았었다. 마치 더 이상 세상에 자신이 있을 자리를 늘리고 싶지 않다는 듯. 먼저 남에게 말을 거는 법도, 눈을 마주치는 법도 없이 그는 언제나의 풍경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신경 써서 바라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묘하게 존재감이 옅음에도 불구하고 악보 외에 하나가 더 튀어나와 오르골의 완벽한 연주 속 틱하고 튀어 나간 한 음처럼 내내 신경 쓰이고 거슬렸다.

 

떼로롱, 익숙한 가게 문의 종소리가 청아하게 울리자 날아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졸업한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그렇다, 슬슬 반에서 나름 주축이었던 녀석들이 고교 동창회를 하겠다며 난리를 칠 만큼의 시간이었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빼고 들고 있던 핸드폰을 카운터에 내려놨다. 능숙하게 앞치마를 메며 여전히 화면이 켜져 있는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던졌다. 아까부터 떠 있던 메신저에는 멸살 고등학교 3-B반의 동창회 초대장이 켜져 있고 사진 밑으로는 이번에는 오지 않으면 아예 네 가게에서 동창회를 열겠다며 꼭 오라는 추가 메시지가 적혀 있다.

 

가지 않은 게 한 세 번쯤 되던가. 하지만 딱히 참가하고 싶지 않았고, 가게 일로 바빴다. 굳이 시간을 빼서 만나러 갈 만큼 친한 녀석도 없었다. 일방적으로 아는 척하는 녀석들은 있긴 했지만. 귀찮은 녀석들을 가게에 모조리 받아줄 여력은 없다. 결국 더운 여름을 함께 했던 아이들을 다시 보러 가야 했다. 가장 덥고 강렬한 여름날의 기억이었다. 그래서일까 여름만 되면 녀석이 자꾸 떠오르는 건. 고개를 흔들며 끊임없는 잡념을 털었다. 가게 문은 열었고 장사를 해야 하니 팔십 먹은 노인네같이 그땐 그랬지, 하는 추억팔이는 이제 멈춰야 했다.

 

어서 오세요.”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지도 않고 건네는 인사는 여느 가게와는 다르게 친절함도 상냥함도 내포하고 있지 않았다. 정말 문자 그대로의 예의상의 인사말이었다. 오빠는 세상에서 말하는 서비스업으로서 갖춰야 할 미소, 서비스 정신 같은 건 갖추지 않았고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못하니 그나마 인사라도 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 동생 유미아의 지론 아닌 지론이었다. 아니면 망할지도 모른다며. 프로게이머를 그만둔 뒤 이 가게를 내기 직전까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이야기였고 유중혁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점이었다. 하지만 음식점 겸 카페는 유중혁이나 동생인 유미아가 의외로 학생들부터 성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가리지 않고 인기가 좋아 나름대로 매출이 나오는 상태였다. 유미아는 뒤에서 음식의 완성도 얼굴이냐며 투덜거렸으나 유중혁은 당연히 본인이 만드는 음식이 맛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별일이었다. 주말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게다가 오늘은 날이 흐려 늦잠 자기 딱 좋은 날이었으니까. 내버려 두면 원하는 곳에 앉겠지 싶어 아예 등을 돌린 채 물병과 유리잔을 챙겼다. 메뉴판까지 꼼꼼히 챙긴 후에야 뒤를 돌았다. 창 너머 꽤나 한적한 대로변을 바라보며 앉은 하얀 코트의 남성의 등이 보인다. 타이밍 좋게 고갤 돌려오는 눈과 딱 마주쳤다.

 

“..?”

 

 

여느 때와 같이 완벽하게 연주되던 오르골의 한 음이, 이렇게 또 튀었다.

 

***

 

뭐로 드릴까요.”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은, 여전한 허여멀건 한 얼굴에 주름진 셔츠의 그가 앉아 있었다. 굉장히 이질적인 장면 같았다. 게다가 그에 대해 떠올린 날에 그가 자신의 가게에 찾아온다니, 요즘엔 소설에서도 사용하지 않을 듯한 클리셰였다. 그가 머리를 자르고 새하얀 코트를 입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여전히 망상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을 거다. 혹은 망상이 현실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최근 인터넷 판타지 소설들에서 유행한다는 소설이 현실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꽤 있지 않은가. 본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최근에 횡횡하는 인터넷 소설들이 싫었다. 상상으로 만들어진 인물과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에 의해 불행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진 극적인 일생을 보며 즐기고 마치 꼭두각시처럼 조종하고 감 놔라, 배 놔라. 이야기하는 꼴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과는 반대로 동생은 누군가 만들어낸 남의 인생을 즐겼다. 그리고 눈앞의 저 남자도 좋아했다. 아주 많이.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머뭇대는 것이 남에 의해서 억지로 떠맡게 된 미화부장을 하면서 주번이 정리하지 않은 것을 말해야 함에도 하지 못하고 끙끙대던 고등학교 때의 모습과 겹쳤다. 결국 모두 야자를 하러 간 후 혼자 노을 지는 교실에 홀로 남아 정리하던 뒷모습도 기억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현역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학교에 나가지 않을 때도 그 뒷모습이 생각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 도와줄 때 마주친 새카만 눈동자도. 자꾸만 그때가 그리운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인가, 이젠 한 치 앞도 모르는 길로는 겁 없이 나아갈 용기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든 것이 세월의 무게에 잊혔기 때문인 걸지도 모른다.

 

“...정식 A로 주세요.”

 

정식 A, 하나요.”

 

털컥, 뒤늦게 내려놓은 잔과 차갑게 식어있던 유리병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주륵, 곡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딱히 아는 척하지 않았고 먼저 친한 척할 만큼 자신의 사교성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알아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적지만 있으니까. 하지만 알아봤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등을 찌르는 시선이 느껴질 이유가 없을 테니까. 이렇게 뚫어져라 본다 한들 그도 나도 끝까지 아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얼굴만 아는 사이, 어쩌다 마주친 음식점의 손님과 주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어중간한 관계, 우리에겐 이 정도 거리가 딱 좋았다.

 

***

 

아침부터 잿빛 하늘이 무겁고 습하고 비릿한 물 내음이 진동하더니 결국은 한바탕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 끝도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투숙, 창문을 때린다.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이라고 했던가, 한숨을 내쉬며 짧게 혀를 찼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낸 방울토마토의 물기를 털어내고 단숨에 반으로 갈랐다. 깔끔하게 잘린 토마토를 잘게 찢어뒀던 양상추 샐러드에 얹어 드레싱을 뿌리고 나서야 잠깐 멈칫했다. 아직은 미숙한 나날들의 기억이 또다시 떠올랐다. 얼룩진 은색 식판 위 구석에 소심하게 모여 있던 토마토의 잔해가.

 

- 설마, 지금까지 그러려고.

 

헛웃음을 한번 흘리며 끓어오르는 냄비에 담겨 있던 파스타 면을 꺼내 버터에 베이컨과 야채가 한가득 볶아져 있는 팬으로 옮겨 담았다. 치이익, 맛있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잘 익은 재료에 면수와 크림소스를 적당량 부어 볶으면 끝. 파스타를 바게트와 함께 오목한 그릇에 담아 쟁반에 올리고 진득하게 만들어둔 복숭아 잼을 평소보다 듬뿍 넣고 탄산수를 부어 저은 유리잔에 얼음을 붓고, 빨대를 꽂으면 정식 A 완성이었다.

 

고개를 들자 마주친 시선에 기겁하듯 고개를 다시 창문으로 돌려버리는 모습이 15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가볍게 앞치마를 풀어 내렸다. 등진 채 앉은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쟁반을 든 채 걸어갔다. 테이블에 음식이 흔들리지 않게 내려놨다. 여전히 쳐다보지 않는다. 어차피 자길 쳐다보지 않는 것 같을 때는 열심히 대놓고 보면서 왜 이럴 때는 못 보는 것일까. 게임에는 풀리지 않는 전술은 없고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과 눈을 못 맞추는 이유, 그것만이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풀지 못한 몇 가지 난제였다.

 

맛있게 드세요.”

 

건조한 공기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랑인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간지럽히는 머리칼을 다시 쓱 넘겼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 얼음이 녹아 유리잔과 부딪히는 소리, 달칵거리며 움직이는 식기 소리 그리고 언젠가 들어봤던 피아노의 음악 소리가 섞여 잔잔하게 귓가로 흘러들었다. 할 일이라곤 식사를 하는 손님을 혹은 새로운 손님을 기다리는 일뿐이고 바깥의 장대비를 보아하니 한동안은 아무도 오지 않을 성싶었다.

 

예전과 전혀 같지 않고 애초에 같을 수가 없는데도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아직은 어리고 여렸던, 서로를 잡기엔 힘이 없었던 때로. 달빛마저 구름 뒤로 숨어 새카맣게 어두운 밤을 아직 기억한다. 장대비가 내리던 골목길 가로등 아래, 빛도 새어 나오지 못하게 푸른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밑에 나란히 서 있었다. 비릿한 물 내음, 순한 섬유유연제의 향기 그리고 미처 식지 못한 풋풋한 땀 냄새. 어딘지 긴장한 채, 외국에서는 겨우살이 밑에 있으면 키스를 한다던 이야기를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흠뻑 젖어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던 새카만 머리칼과 어딘지 상기된 하얗고 붉은 얼굴. 끊임없이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우산 밑, 팽그르르 돌아가는 우산살 아래로 현란하게 산란하는 빛 방울. 그 가운데에서도 눈을 잡아끄는 것은 단 하나, 도시의 하늘에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별빛이 거기 있었다.

 

그날의 모든 것은 충동적이었다고 밖엔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처음 눈이 마주쳤었고, 자신과 짝이었던 다른 주번은 녀석에게 할 일을 미루고 도망가버렸고 녀석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과 함께 뒷정리를 했다. 어둑한 저녁, 쏟아지는 장대비 아래 우산은 하나, 허옇고 빼빼 마른, 안 그래도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는 녀석을 우산 없이 그냥 보낼 수는 없어 우산을 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거절당했었지. 그에 어딘지 울컥해 충동적으로 집 앞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던 것도, 가로등 아래서 숨과 숨이 마주했던 순간도. 모두.

 

...”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하다 결국 카드만 내미는 모습에 그냥 문득 궁금증이 치밀었다. 그날 너는 왜 거절했을까? 다른 사람의 부탁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으면서, 못이기는 척 받아들였으면서 왜 자신의 질문에는 우물쭈물하면서도 칼같이 거절했을까. 우리는 또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물어볼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어린 날의 실수라고 생각했을까. 그날 이후로 자신은 프로리그 참가 때문에 한동안 학교에 나갈 수 없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땐 녀석은 한여름에 생겼던 아지랑이처럼, 코끝을 스치는 향기처럼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문득 카운터에 올려뒀던 핸드폰에 눈이 갔다.

 

“...이번 동창회에 가나?”

 

딱히 대답 없이 다시 내미는 카드를 받고 쳐다보기만 하는 모습에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과는 달리 자신에게는 대답해줄 거로 생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깨닫는 순간 기분은 그야말로 최악, 처참하다는 단어밖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딘가 놀람이 담겨 있는 눈동자를 무시하고 자리를 정리하러 움직였다. 투명한 샐러드 볼에는 전혀 손대지 않은 방울토마토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아직도 안 먹는군.”

 

바깥으로 나가던 걸음이 잠깐 멈추었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아니, 아마 착각이 아니다.

 

그렇다면 귓가를 속살거리듯 스친 네가 간다면, 라는 말도 착각으로 치부해야 할 테니까.

 

***

 

며칠 전 그날부터 내내 그칠 생각이 없는 비를 뚫고 동창회가 열리는 성류호텔 앞까지 와버렸다. 이런 호화스러운 호텔은 프로게이머를 그만둔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이 왔었고 애초에 묵을 일도 없었으니까. 발렛 요원에게 차를 맡기곤 앉아있느라 주름이 졌던 검정 코트를 한번 펄럭였다. 호텔 내부로 들어가자 공기 중의 습기가 모두 잡혀 금세 습기를 머금었던 옷자락이 건조하게 펄럭였다.

 

사실 그다지 안 만나고 싶은 녀석들과 만남의 장이 펼쳐지는 곳에 초대장과 함께 온 협박 아닌 협박 때문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씹으면 될 일이고, 그들은 정확하게 자신의 가게를 몰랐다. 평소, 연락도 그다지 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아니 사실 알아도 별로 상관없긴 했다. 지금 이 모든 것이 변명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펼쳐진 공간은 반 하나가 동창회를 한다며 부르기엔 꽤나 큰 크기의 홀이었다. 이름이 스트림 홀이라고 했던가. 성류 호텔의 스타 홀과 스트림 홀은 성류 - 星流, 은하수라는 그 이름을 내건 홀이기도 해서 예약하기도 힘들고 그 화려함이 국내외 그 어디도 비교할 곳이 없는 곳이라고 들었다. 이번에 나름 15주년이라며 반에서 집안이 잘산다던 놈이 어렵게 예약을 주선했다고 하던가. 어쨌든 들려오던 소문들은 딱히 틀린 말들은 아니었다. 커다란 샹들리에를 제외하더라도 별처럼 수놓아진 크고 작은 크리스털들이 빛을 반사하며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밑으로 뻗은 대리석 기둥엔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인물상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장식을 진짜 보석으로 하다니 사치의 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빛깔에 홀리는 기분이었다.

 

왔냐? 유중혁, 너는 진짜 무정한 놈이다. 기어이 협박을 해야 나와?”

 

그런 것 아니다.”

 

아니면, 네가 왜 나와? 누구 찾는 놈이라도 있냐? 너한테 그런 놈이 있을 리가... 뭐야 진짜 있냐? 찾는 사람?”

 

“....”

 

, 대답을 안 하는걸 보니 있나봐. 누군데?”

 

알 것 없다.”

 

매정한 말에 친한 척 달라붙은 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녀석들의 이름을 줄줄이 대가며 반응을 살핀다. 팔을 붙잡고는 응? 얘는? 그럼 쟤는? 하며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아이들을 하나씩 지목한다. 스트림 홀에 있는 전원을 가리킨 후에도 딱히 반응이 없자 이 안에 없냐며 더 불타오르기 시작해 나오지 않은 녀석들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말해가며 귀찮게 굴었다.

 

아니, 다 지목했는데 없는 건 뭐냐? , 투명 인간이라도 만나러 왔냐?”

 

, 아냐. 한 명 더 있는데. 누구더라.”

 

누구?”

 

이름 특이했던, 우리 반 미화부장. 이름 기억나냐?”

 

... 아마 이름이 작간지 독잔지 그러지 않았냐?”

 

, 맞네. 걔다. 김독자. 절대 아닐 거 같긴 한데. 얘가 마지막 희망이네. 혹시 김독자?”

 

조용한 공기에서 무언의 긍정을 읽은 친구는 옆에서 기함을 토했다. 너희 대체 무슨 사인데? 아니 대화는 한번 해봤냐? 누가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었다. 누가 생각해도 둘 사이의 그 어떤 관계도, 접점도 없었다. 같은 동아리도 아니고, 친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유중혁과 대화하는 인물이 적었다. 특히 학창 시절의 유중혁과 대화를 할 정도의 인물은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었다. 첫째, 목적이 있거나 둘째, 유중혁의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쇠심줄 같은 정신력을 가졌거나 셋째, 눈치가 없거나. 김독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안에 들어가지 않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본인이 그 안에 속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친구도 친구였다.

 

귀찮은 떨거지를 달고 너른 홀을 한 바퀴 돌았으나 전혀 수확이 전혀 없었다. 쓸데없이 눈치만 좋은 떨거지 때문에 처음보다 더 귀찮아지기만 했다. 그 녀석의 하얀 코트 자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홀 옆면을 가득 채운 창문 바깥을 봤다. 뒤늦게라도 오지 않을까, 실크보다 얕은 희망을 품고서. 거리에 색색이 활짝 펼쳐졌던 천들이 접혀 들어간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인영들 틈에서 눈에 익은 코트 자락이 보였다. 누군가를 찾는 듯 같은 자리를 맴돌며 고민하던 인영은 곧 고갤 숙이고 호텔 건너편의 카페로 들어가 앉는다.

 

찾았다.”

 

? 걔 왔어? 없는데.”

 

간다.”

 

!”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릴 무시한 채 홀로 그날의 여름을 찾아 나섰다. 살과 살이 진득하게 착 달라붙었다 쩍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아스팔트, 그 위로 한 입 베어 물었을 뿐인데 추락해 녹아내리던 아이스크림. 작열하는 태양 빛에 말라비틀어진 노란 잎들이 하나둘 떨어지고 아지랑이가 피는 길거리로 향해 나아가던 그 날을. 그 길 끝에 무엇이, 누가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