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즈막한 저녁. 푸르던 하늘이 아직도 머무를 수 있는 시간. 높은 건물의 옥상을 그래도 그나마 저녁이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바람 덕에 조금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한 김독자는 웃으며 건물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오늘은 우리가 유료화를 끝내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지 딱 한달째 되는 한여름이었다. 모두가 안전하고 목숨이 위협받지 않는 삶을 즐기고 있을 때 유일하게 김독자 그 혼자만이 그 속에 섞여들지를 못했었다.

 

 

***

 

 

아저씨, 또 밥 안챙겼지?”

...그럴 걸?”

 

대체 자신이 먹는 걸 기억 못하는 사람이 어디있나 싶겠지만 워낙 밥을 안 챙겨 먹곤 하는 김독자는 자주 이렇게 대답했다. 김독자는 누가 와서 챙겨주거나 전화로 잔소리 하지않는 이상 통 밥을 챙기지를 않았다. 김독자 컴퍼니 일행들은 역시 그의 연인인 유중혁과 붙여놔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김독자는 그 특유의 웃음으로 괜찮다면서 넘겼다. 정작 그의 애인 유중혁은 언제라도 그의 집에 쳐들어 갈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왠지 모르게 이 사회에서 겉도는 그였다.

 

,우리 오늘 요 앞에 카페 가봐요!”

김독자! 요 근처에 놀이공원 생겼댄다. 가자!”

김독자,언제까지 집에만 있을건가. 나가서 운동이라도 하지.”

 

가끔 아이들과 컴퍼니 사람들 그리고 유중혁이 찾아왔다. 너무 집에만 있는 그를 끌어내 집 앞 카페라도 놀러가야만 마음 속 어디선가 피어 오르는 불안감을 덜칠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디서 안 보인다싶거나 너무 말이 없으면 항상 무슨 일을 내거나 했던 김독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그를 신경쓰는 모습에 항상 어쩔 수 없다는 모습으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김독자였다.

 

하하... 그래그래 나가자 나가.”

 

밥도 안챙기고 밖에도 안나가니 날이 갈 수 록 말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매일 매일 이불 속에서만 파묻혀서 핸드폰만 들이파는 김독자는 어디에도 나가고 싶어하지 않아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걱정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뱉는 건 도 역시나 그의 연인 유중혁이었다.

 

 

***

 

아저씨!”

!”

 

언제나 그렇듯이 방에 틀어박혀 있을 김독자를 끌어내기 위해서 그의 집에 쳐들어 온 아이들이었다. 평소라면 잠에 취해 밍기적 기어나와 아이들을 끌어안아 줄 김독자였지만,왜인지 그날따라 조용했다.

 

형 아직도 자고있나?”

가능성 있어 아저씨라면...”

 

밤 늦게 잠드는 게 일상인 김독자를 떠올린 길영이에 물음에 유승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상 1시를 바라보는 시점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김독자의 침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이불에 파묻혀 자고 있는 김독자의 모습이 비추어 지는 것이 아닌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침구들의 모습만 아이들의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보지를 못했던 장면이었기 때문에 몇분간을 멍하니 그 관경을 바라보았다.

 

형 어디갔어?”

 

누가봐도 당황한 길영이의 목소리에 똑같이 당황한 유승이의 다리가 분주하게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침실로 돌아와 혼란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아저씨 집에 없어!”

김독자가 집에 없다고?"

 

아이들을 따라왔던 한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아이들에게 질질 끌려나올 김독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막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없다는 말이 들려온 것이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그녀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이들이었다.

 

,김독자도 어디 나갈 일이 있나보지.”

 

별일 아니라는 듯한 말투에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가벼운 수영의 행동이 그나마 아이들을 안심 하게 만드는 듯 보였다. 실제로 김독자는 항상 그 구원이라는 것을 하든 어느 상황에서 도망가려 할 때마다 보이는 모습이 근래에는 없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 그 일행들을 버리고 어딘가로 사라질 법한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연락해볼게. 너네는 집에나 가라.”

네에...”

 

한수영은 시무룩해진 아이들을 김독자의 집에서 가까운 집으로 제대로 돌려보내고는 다시 김독자의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들어서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지,한수영?”

,김독자 집 나갔다.”

나갔다고? 대체 그 녀석은 무슨 작정인거지.”

내가 뭘 아냐? 그리고 애인한테 아직도 그 녀석이라고 하는 놈은 너뿐일거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 그래서 지금 찾으라 이건가?”

맞어. 솔직히 뭐 어디 떠나려는 거는 아닌거 같고 난 바쁜 몸이라서.”

 

키득거리는 한수영의 웃음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자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유중혁이었다. 어느 누구든지 다 대책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알겠다는 간결한 대답만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옷을 챙겨입고는 김독자의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래봤자 바로 윗층이었지만 말이다.

 

유중혁은 김독자가 한 아파트를 계약 했다는 사실에 바로 그 위층의 집을 계약 해버렸다. 죽어도 혼자 살겠다는 김독자를 죽어도 혼자 아파트에 사는 것을 놔두는 것을 못 하겠다는 이유였다. 그리고는 거의 매일을 저녁에 김독자의 집에 쳐들어왔다. 초반에는 그래도 잘 챙기겠지 싶어 한두달을 내버려 두었더랬다. 하지만 대체 누가 이 시기에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을 한단 말인가. 그때의 김독자는 컴퍼니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잔소리를 들었더랬다. 특히 유중혁과 이설화에게. 그리고 그 이후로는 거의 매일을 집에 들이닥쳐 밥을 챙기는 유중혁에 그나마 다른 이들은 안심 할 수 있었다. 워낙 밖으로 안나가는 건 자신들이 어찌 할 수 는 없었지만 아이들이 그나마 밖으로 데리고 나가 신경 끌 수 있었다. 근데 그랬던 김독자가 갑자기 아무 연락 없이 침실을 깨끗이 치우고 나갔다니 이상하게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대충 옷을 챙겨입고 도착한 김독자의 집에 한수영은 이미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유중혁이 쓰지 않는 이상 아무도 쓰지 않는 부엌은 어제 자신이 치우고 간 모습과 똑같았다. 그 외의 거실은 차가운 카펫과 소파 그리고 꺼진 티비만이 이 집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깔끔히 정리된 침실을 보곤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오늘만 몇번을 한숨을 쉬는건지 싶었다.

 

 

***

 

 

역시 덥네. 언제 이렇게 더워진 거지...”

 

한창 장마가 지나가버린 하늘은 푸르른 도시 속 모습과 함께 옥상 위 호자 서있는 김독자도 같이 담고있었다. 그러한 풍경에 실없는 웃음을 내뱉은 그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아직은 복원 중인 건물들과 벌써 깔끔하게 돌아온 상가와 좀 낮은 건물들. 그리고 그 속에서 활기차게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김독자는 품 속에서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라이터로 쉽게 불을 붙이고는 크게 들이마시자 담배 연기가 폐 깊숙히 들어와 가득 채웠다. 후하고 내뱉자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참으로 쓰다고.

 

한달 전, 모두가 그 끔찍한 유료화 세상이 끝나자 기뻐했다. 그의 연인인 유중혁도 기뻐했으며 컴퍼니 일행들 모두가 울기도하고 웃기도 하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아무런 표정도 못 짓고 우두커니 서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독자였다. 그는 참으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뻐보였으나 어딘가 슬퍼보였고, 쓸쓸해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이 세상이 아니라면 과연 나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 줄 세상이 어디 있을까하고 말이다. 그를 끔찍히도 아끼는 일행들과 그라면 모든 것을 바칠 애인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중요한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으며 불길로 뛰어들기를 자처했다. 구원이라는 이름을 내새워 다른 이들을 구하고 그들을 상처 주었다. 그는 그냥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래도 자신 나름대로 자신에게 의미를 둔 세상이 사라지니 그는 그저 무기력 해졌다. 집에 틀어박혔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가끔 너무 함들다 싶으면 죽이나 사다 조금씩 먹었다. 그러다 쓰러졌을 때는 주변인들의 걱정이 담긴 잔소리와 화를 잔뜩 들었었다. 그렇게 한참을 근 한달 간을 생각하고 있자니 어지간히 생기없이 살았구나 싶었다.

 

김독자.”

 

어느순간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그는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애인이 서있었다. 김독자는 해사하게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중혁아. 여긴 왜 올라온거야?”

한수영에게 전화를 받았다. 니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말이지.”

걔도 참 쓸데없는 말 했네. 그래도 바로 여기로 왔나보네? 지쳐보이지도 않고.”

그래. 니 녀석 체력에 멀리 나가지는 않았을테니까.”

하하, 맞는 말이지만 심하다 중혁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실 웃는 김독자는 어느새 그의 옆으로와 그를 끌어안았다. 김독자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에 유중혁은 그가 있던 자리에 쌓인 담배꽁초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담배 핀건가김독자.”

뭐 어때. 어저다 한번이잖아."

 

김독자는 어딘가 심란하거나 피곤할 때 담배를 피고는 했다. 저렇게 쌓인 담배꽁초를 보니 어지간히 복잡한 듯 보였다. 유중혁은 그를 대충 끌어안아서는 옥상에 놓인 긴 산책길에 있을 법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자신도 옆에 앉아 그 치곤 많이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또 무슨 일인거지?”

, 그냥 요즘 생각이 많네.”

쓸데없이 안 움직이니까 그런거다.”

그런걸지도? 있지, 중혁아.”

말해라.”

난 미친걸지도 몰라. 나는 아직도 우리가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곳이 그리워.”

“...”

 

김독자의 갑작스러운 말에 유중혁은 아무말도 하지않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살풋 웃고는 고개를 숙인채 김독자는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어떻게 그 끔찍한 세상이 그리울 수 있는지 말이야. 나도 날 모르겠어. 소중한 사람들과 지낼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이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가 않아.”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인채 이어지는 말의 끝에는 물기가 묻어났다. 그의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해도 그가 울고 싶어함은 알 수 있었다.4의 벽이 사라져버려서 그런 것일까 그는 굉장히 슬퍼보였다. 오늘다라 감정에 솔직했다. 그래서일까 마치 그의 모습은 장마기간에 폭우 속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 같았다. 그 폭우에 언제라도 휩쓸려 사라질 둣 보였다. 그런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유중혁은 김독자의 이름을 불렀다.

 

김독자.”

나도 그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데 그게 안되는거야. 내가 왜 여기 살아있는지 내가 왜 이렇게 누워있는지도 모르겠더라고.”

 

그의 물기 어린 말에 구름이 흘러가던 푸르른 하늘 아래 고요함이 가득찼다. 마치 다시금 그 장마처럼 슬픔이 쏟아져내려서 그들을 푹 적셔 놓을 거 같았다. 유중혁은 가만히 그를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마저 말하라는 듯 그를 기다려주었다.

 

너를 만나기 이전의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어. 사회력 부족한 그런 문제가 많은 인간이었지. 그런데 그런 내 앞에 무언가 나를 증명할 그런 세상이 나타나줬어. 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해주는 그런 세상이.”

“...그랬군.”

. 근데 그 세상이 끝나니까 분명 그 세상에서는 배도 고프지가 않았고 졸리지도 않았어. 근데 지금은 고작 몇시간을 굶어도 배고프고 하루 안자면 피곤하더라고.”

 

그 말을 마치고는 고개를 든 김독자의 얼굴에는 볼을 타고 이미 수없는 눈물들이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물을 닦아주자 김독자가 하는 말에 유중혁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이런 세계에서 나는 나의 가치를 찾지 못하겠어 중혁아.자신을 사랑 할 수 없는 자신의 애인이 너무나 애처롭고 슬퍼서였다.어째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삶의 가치 또한 찾지 못했다.

 

또 기만이라고 대답할거지? 알아 알고있어. 이게 너희를 향한 기만이라는 걸.”

 

체념한 듯한 말과 가득 서린 물기에 유중혁은 자신이 끌어안고있던 김독자를 다시 고쳐 안아 자신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지만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 했다.

 

기만이라. 그래 너의 그 모습은 기만이라 할 수 있지.”

 

유중혁의 말에 김독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의 단호한 애인을 바라보았다.

 

김독자. 나는 더 이상 회귀자가 아니다. 너 역시 더 이상 성좌가 아니지.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놈들도 없어진 지 오래다. 이런 사회에서 너의 가치를 못 찾겠다면 내가 찾아주지.”

 

단호한 그의 말에 김독자는 눈물이 맺혀 촉촉한 눈으로 유중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의 삶에 대해 그리고 너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읽어 나가면 되는거 아닌가.”

유중혁 답지 않은 말이네.”

 

그의 진지한 말에 하하 웃고는 그 답지 않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는 김독자였다. 그리고는 유중혁을 껴안았다. 안겨오는 애인에 그는 서툰 손길로 김독자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유중혁의 서툰 토닥이는 손길을 받던 김독자는 사랑해 마지 않는 애인의 품에서 나와 다시금 옥상의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는 한번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일어나 걸어나간 그의 뒤를 따라가던 유중혁을 보면서 김독자는 말했다.

 

그래도 덕분에 괜찮아진 거 같네. 상쾌하기도 하고 좀 덜 복잡하달까.”

 

싱긋 웃는 그의 얼굴은 그래도 어딘가 편안해 보였다. 자신의 살아가는 이유를 알아가는 사람처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럴 일은 더 없을거다.”

 

그의 뒤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푸르른 생기 가득한 모습이었으며 이제 그 하늘은 더 이상 옥상 위 혼자있는 김독자만를 담지 않았다. 그 하늘에 담긴 모습은 자신을 사랑하는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는 모습을 담고있었다. 한차례의 장마가 지나간 여름처럼 김독자의 삶도 한차례의 장마가 지나가고 맑은 모든 것을 품은 하늘만이 남아있었다.